화산귀환

[청명당보] 봄春

여여열 2023. 2. 19. 17:35

2022년 02월

 

*단어 선택에 있어 미숙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또 연모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나 명료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러느냐, 한다면 그건 아니었으나 그런 것들로는 지금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 그 무엇보다 어려웠다.

 

그렇다면 보통 누군가를 연모한다고 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일까. 적어도 주위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것만 고려해봐도 상대의 다정함에 또는 상대의 친절함에 넘어가지 않았던가. 굳이 연모의 감정까지 가지 않는다고 하여도 늘상 폭력을 휘두르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정신이 나갔다거나 취향이 남다른 게 아니라면 머리에 비도를 정면으로 맞아 어디 한군데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분명 그러할 터인데……. 속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필 그런 인간에게 마음을 품은 정신 나간 인간이 다름 아닌 저였다.

그동안 그 인간한테 얻어맞았던 게 사실 머리였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머리도 꽤 맞았구나. 역시 그렇지. 그러지 않고서는…….

 

각설하고 조금 더 이 문제에 다가가 보자면 당보는 비무 이후 그런 청명이 마음에 들어 그를 쫓아다니며 끝내 친우의 자리를 꿰찼던 것은 맞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할 말이 없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친우의 선에서였다. 친우로서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지 그 이상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당보 자신조차도 예상 못 했던 것인데.

 

이제는 젊은이들이나 느끼는 감정이라고 치부하며 이제는 저와 완전히 동떨어진 무언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웃듯 이런 감정이 차고 올라왔다. 그것도 청명과 같이 보낸 해가 얼마나 많은데 이제야.

 

인정은 쉬웠다. 암존 당보가 매화검존 청명에게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인정이 쉽다고 해서 모든 게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이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이. 그런데 성격 급한 저 이는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당장 내일 튀어오라는 전서를 본 당보가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상관없으려나. 티를 안 낼 자신은 없어도 청명의 눈치를 믿었다. 그런 행동거지와 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는 도사였다. 심지어 그런 성격 탓에 누구 하나 좋아해 본 적 없을 것이고, 그런 감정을 누군가 내보였을 리도 없었다. 그러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게 당보가 제 감정을 깨달았을 때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허나.

 

“미치겠네.”

 

지금 심정을 딱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랬다. 무슨 일이 생기든 여유를 잃은 적 없었다. 살아오면서 당황하게 만들 일이 뭐가 있을까. 청명에 대한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도 크게 방황하지는 않았었다.

그랬던 당보인데.

 

 

“너 요즘 이상하다?”

“제가 또 뭘 했다고 그러실까.”

 

저 요즘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음식에 독도 안 탔고. 괜한 말을 덧붙여 어김없이 날아오는 폭력을 피해낸 당보가 멀찍이 서서 청명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아니면 또 오늘은 무슨 일로 기분이 안 좋으시오? 그런 생각을 하게?”

“그런 게 아니라…….”

됐다. 청명은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이미 의아함이 동한 당보는 슬금슬금 청명의 곁에 가서 섰다.

 

“그렇게 말하면 궁금하잖소. 어차피 숨기는 것도 못 하고 참는 것도 못 하는 거 다 아니까 그냥 말하셔도 됩니다만?”
“이게 또!”

 

또다시 들어 올리는 청명의 손을 잡고서 내린 당보가 실실 웃었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한 대 정도는 맞을 줄 알았는데 순순히 제 손에 이끌려 내려오는 손에 당보의 궁금증이 한층 더해졌다. 이럴 인간이 아닌데 정말 오늘 무슨 일 있나? 내가 뭘 했더라. 뭣 때문이지.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찔리는 구석이 제법 많았던지라 당보는 청명을 향해 웃어 보이면서도 머릿속은 바삐 그동안 했던 일들을 되돌아보고 있었다. 청명 역시 구태여 언급은 하지 않더라도 이런 당보를 알고 있긴 했을 것이다.

 

“도사 형님?”

당보가 한 번 더 재촉하자 청명 역시 마음을 정한 듯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달라붙냐?”
“네?”

 

청명의 말에 당보의 표정에 당황스러움이 자리했다. 제가요? 그래. 너.

 

“제가 뭘 했다고요?”

당보의 억울한 물음에 청명은 뭐라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도 얼마 못 가서 끝내고는 앞으로 달라붙지 말라는 말로 일축해버렸다.

아마 ‘근데 내가 이놈한테 왜 설명을 해줘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청명은 설명을 던진 듯했다.

 

 

이를 끝으로 당보는 청명과 헤어졌었다. 붙잡는 당보를 떨쳐내고 매정하게 가버리는 청명의 뒷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더라.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진 않았지만, 좋은 말은 아니었으리.

 

당보는 그렇게 청명과 헤어진 후 아무렇지 않게 거처에 돌아와 씻고 시비들을 물리고 편히 앉았다. 이 넓은 곳에서 혼자가 되었다. 늘상 유지하고 있던 표정이 무너졌다.

마지막까지 청명에게 억울하다고 항의했으나, 사실 억울할 것도 없었다. 평소보다 저도 모르게 사심을 담아 더 들러붙었던 게 맞긴 하니까. 다만 청명이 눈치를 챌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못 했다. 그래서 만족을 모르는 몸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갔었다.

이 모든 건 청명이 쓸데없이 본능적인 감각이 뛰어난 인간이라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게 연모의 감정에 빠져버린 탓에 정작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한심해도 이렇게 한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더 자책하는 꼴도 우스웠으니 차라리 앞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자제하는 게 나았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청명의 친우로서 지내려 의식하는 게 나았다. 뭐 이 부분도 청명이 이상함을 느낄 수는 있으나 선을 지키면 딱히 다른 말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한 번쯤은 물어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뭐가 아무것도 아니냐면서도 더 물어보지는 않을 테니까. 청명은 그런 사람이었다. 무심한 척, 관심 없는 척, 모든 걸 제멋대로 굴면서도 곤란해하거나 답하기 어려워하면 타박하며 은근히 넘어가 주곤 한다.

아니. 그러니 내가…….

됐다. 더는 무의미했다.

 

어차피 청명은 이 감정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당보가 청명에 대한 감정을 어디까지 품고 있는지.

당보에게 있어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

 

 

벌써 다섯 번째다. 청명의 손과 제 손이 닿은 게.

 

고작 이런 것으로 설레냐면 설레는 건 맞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로 의식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감정이 더 컸다.

 

지금의 감정을 어떻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청명이 부담스럽지 않게, 지금의 친우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끔 당분간 거리를 두자던 그 다짐을 당보는 여즉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달라붙지 마라.’ 같은 말로 사람을 심란하게 만들고 이 다짐을 하게 만든 당사자는 본인이 내뱉은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착각이겠지. 도사 형님이 그럴 리가 없지. 일부러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겹치고 또 겹치다 보니 당보도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기가 힘들어졌다. 짧은 고민 끝에 당보는 청명을 불렀다.

 

“도사 형님.”
“왜.”

“혹시 뭐 잘못 드셨습니까?”
“……뭐?”

반사적으로 올라오는 손을 피해 멀찍이 떨어진 당보의 눈매는 갸르스름 했다.

 

“분명 도사 형님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멀찍이 떨어지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가까이 옵니까?”
“그런 말은 한 적 없는데.”
“아니, 분명 달라붙지 말라고 하셨잖소. 그게 그거지. 혹시 기억을 못 하는 거요? 벌써 그럴 나이가…… 되시긴 했군.”
“또 까불지.”

또 들어 올리는 손에 당보는 여전히 청명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왜 그러는 거요?”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예?”

당보의 되물음에도 청명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당보에게 해줄 말을 고르고 있는 듯하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또 뭘 했다고? 점점 심상치 않은 낯이 되어가는 청명에 당보 역시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가뜩이나 요즘엔 청명을 신경 쓰느라 무언가 하질 않았는데?

 

“너 말이야.”

 

청명의 미간은 아까보다 더 찌푸려져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리 무게를 잡아? 그런 청명을 따라 당보 역시 긴장감에 조금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만 해.”

하나만 해. 하나만? 하나? 긴장감에 굳어있던 표정이 삽시간에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런 당보의 얼굴 변화에도 청명은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닥이 잡히는 게 없었다. 요즘 한 게 있어야 반박을 하든 죄송하다고 하든 하지. 평소처럼 한 게 없어도 똑같이 답을 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청명에게 무언가 하고 속이고 있었을 때가 말하기는 더 쉬운 듯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청명은 당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는 듯 훑었다. 다시 긴장감이 물들었다. 평소에도 소름 끼칠 정도로 표정을 굳히긴 해도 그게 늘 당보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독을 먹여 걸려도 그저 패기만 했지, 저런 기세를 풍기진 않았으니까.

청명을 부르려던 차에 청명이 한발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억누르는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어봤자 짜증만 나니까.”

청명은 언짢다는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원래도 불편함을 숨기지 않은 그였지만 오늘은 한층 더 심했다.

 

너 말이야. 하나만 해. 그렇게 억누르는 표정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어봤자 짜증만 나니까.

청명이 뱉은 말을 한 자 한 자 곱씹어보았다.

 

하. 헛웃음 친 당보가 삐딱하게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를 보는 눈매가 여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내 진작에 알고 있긴 했지만, 진짜 나쁜 놈이네.”

“뭐 이 새끼야?”

 

날카로운 말과는 다르게 청명은 평소처럼 손을 들어 보인다거나 검에 손을 대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고 당보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렇게 또 안 어울리는 짓을. 그런 청명에 노려보는 것은 그만두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눈매로 돌아왔다. 당보는 다시금 입술을 뗐다. “제가 졌소.”

 

당보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눈매는 그대로였지만 눈동자는 아까보다 가라앉아 짙었다.

“제가 졌으니 이제 그만할 거요.”
“뭘 그만해.”
“지금 몰라서 묻는 거요?”

 

마주친 청명의 눈빛이 아까와는 전혀 달랐다. 흡. 일순간 청명과 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깐의 침묵. 모든 걸 꿰뚫어 보려는 듯한 눈빛.

그럼에도 당보는 입술을 떼야만 했다. 청명에게 해야 할 말이 있었으니까.

 

“……미안하게 됐소.”

“뭐?”

“허나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바뀌는 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어차피 곧 정리할 터이니.”

“…….”

“형님께서도 그게 더 편하지 않으시겠소? 그러니 어울리지도 않게 신경 그만 쓰시고 기다리기나 하십쇼.”

“당보야.”

숨도 안 쉬고 몰아붙이는 듯이 말하던 당보는 청명의 말 한마디에 모든 걸 멈추었다.

 

“내가 그 말 들으려고 이런 줄 아느냐?”
“…….”

“내가 왜 귀찮게 이 짓을 하고 있는지 그 머리로 한번 생각해 보거라.”

 

*

 

 

이번에 홀로 바라보았던 청명의 등을 보면서 일전과는 다르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생각을 피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웠으니 다른 생각을 구태여 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 외에는 저번과 다름이 없었다. 청명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는 청명이 아닌 남들이 아는 사천당가의 태상장로 암존이 되어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돌아와 절 맞이하는 시비들과 식솔들을 적당히 상대해주고 평소보다 빠르게 당보가 홀로 지내는 거처로 향했다. 모두를 물리고 혼자 남았을 때, 암존은 당보가 되었다.

 

막 생각의 심연 속에 들어가려는 그때 ‘내가 왜 귀찮게 이 짓을 하고 있는지 그 머리로 한번 생각해 보거라.’ 청명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거슬려졌다. 청명이 귀찮은 짓을 왜 하고 있냐니. 그야 친우라는 놈이 귀찮게 옆에서.

 

‘아.’

 

청명은 상대가 곤란해하는 일도 넘어가 주는 게 맞긴 했으나, 모든 걸 떠나 자신이 별 소득 없이 귀찮아질 만한 일은 구태여 벌이지 않았다. 당보와의 일은 양민들을 돕거나 사파들을 소탕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청명에게 있어서는 정말 지극히 사사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청명은 모르는 척 넘어가지 않고 들쑤시는 걸 택했다.

 

하…하하……. 웃음이 새어 나왔다. 머릿속에 떠오른 가정은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것 말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제법 무게를 잡은 것치고는 혼자 돌아와서 했던 생각은 길지 않았다. 오히려 의문에 대한 답을 너무 빠르게 내려버렸었다. 청명의 앞에서 그토록 혼자 헤매던 게 억울할 정도로 말이다. 이 정도였으면 아까 청명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을 마친 당보는 애가 탔다. 단 하루도, 아니, 이 밤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당장이라고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은 걸 참고 참다 해가 뜨기 무섭게 청명이 있을 섬서로 향했다.

 

 

“도사 형님.”

청명은 삐뚜름하게 당보를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수련을 하던 청명은 역시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청명을 발견한 당보는 서서히 걸음을 멈추고 적당한 거리 끝에서 청명을 마주했다.

조금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험난한 바위산에는 청명이나 청명을 필요로 하는 당보말고는 스스로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전에는 이 부분에 대해 청명을 찾을 때마다 불만을 토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죄송합니다.”

또 그 소리냐. 청명의 표정에 생각이 그대로 드러났다. 거기에 짜증 난다는 기색이 따라 피어올랐다.

 

“이번에는 그런 의미로 찾아온 거 아니니까 표정 좀 푸십쇼.”

 

당보는 제법 오랜만에 웃음을 머금었다. 웃기는. 목소리는 불퉁했지만, 당보를 마주하는 표정은 한결 가벼웠다.

 

“너무 제 생각만 했습니다.”

“…….”

“도사 형님, 연모합니다.”

“…….”

저게 고백을 듣는 이의 표정인가 싶기도 했지만, 당보는 알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처럼 보일지라도 묘하게 올라가 있는 입꼬리를.

 

“대답… 안 해줄 겁니까?”
“아니까 찾아온 거 아니냐.”

 

홱 돌아서 깊이 들어가 버리려는 청명에 당보는 웃음을 띤 채 그 발걸음을 따랐다.

밤새 품고 있던 생각도 이제는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다.

 

“형님도 사실 제가 좋았던 거죠? 사실 저보다 더 먼저 저를 좋아했던 거 아닙니까?”

“헛소리.”
“헛소리라뇨!”

또 가볍게 당보의 말을 무시해버린 청명의 걸음이 아까보다 빨라졌다.

아, 형님!

절 부르는 당보를 뒤로 한 채 걸어가는 청명의 귀와 목덜미에는 그가 피워내던 매화가 옮겨가 피어난 듯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당보의 표정에는 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