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조걸] 愛情
*연교용
사형이 이상해졌다.
누군가 들으면, 정확히는 당사자가 들으면 험한 말과 함께 제 몸이 저 가파른 절벽 중 한 곳에 처박힐 만한 불순한 생각이었다. 간만에 평소답지 않게 끙끙대며 머리를 굴려본 것이지만,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고, 심지어 기껏 생각이라는 걸 해서 나온 결론도 쓸모없었다. 역시 이런 건 성정에 맞지 않았다. 다른 거 생각할 것 없이 지금 당장이라도 윤종에게 달려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내뱉고 싶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고민을 하게 만든 윤종의 어깨를 붙잡고, 사형 드디어 미치셨습니까?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걸 들은 윤종은 붙들고 있는 손을 거칠게 떼어내고.
미친 건 네놈이겠지.
못 들을 걸 들었다며 망설임 없이 걷어찰 것이다. 몸이 절로 오그라들었다. 아직 맞은 것도 아닌 그저 상상뿐인데 그동안 맞아왔던 몸은 그때를 회상하는 듯 욱신거렸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뻐근한 팔을 주무르며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벌떡 일으켰던 몸을 다시 뉘었다. 비어있는 천장에 윤종의 얼굴이 둥실거리며 떠다녔다. 윤종의 얼굴이 떠오르자 이런 짓을 하게 만든 일들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잘했다.”
짧은 칭찬과 함께 윤종이 손을 뻗어왔다. 늘 듣던 험한 말과 거친 손길이 아닌 칭찬과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검수의 손이 절대 부드러울 수는 없지만, 분명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검수인 걸 잊을 정도로. 평소 그가 칭찬에 인색한 편은 아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조걸에게는 그 누구보다 인색하게 구는 게 윤종 아니었던가.
“사형이 웬일이십니까.”
다소 놀란 낯으로 물었으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늘 말보다 먼저 반겨줬던 폭력적인 손길도 없었다. 윤종은 별 반응 없이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 오히려 그 행동에 저도 모르게 흠칫했지만, 아까 전 그 손길이 싫었던 것은 아니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 번 더 받고 싶다. 쓰다듬 받고 싶다. 사형에게. 윤종 사형에게. 고민은 짧았고 몸은 빨랐다. 조걸은 한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워진 거리에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는 윤종에게 망설임 없이 당당히 요구했다.
“더 해주세요.”
“싫다.”
“왜요!”
당연히 해줄 것 같진 않았지만, 조금의 고민도 필요 없다는 듯이 바로 날아오는 거절에 불평을 토해냈다. 그런 게 어딨습니까! 한 번 해주셨으면 계속 해주셔야죠! 또 해주세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귀찮게 굴지 마라는 듯이 몸을 돌려 피하려는 윤종의 앞을 막아섰다.
사형!
하…….
결국 한 대 얻어맞고서야 윤종을 보내주었다. 주위에서 맞을 짓만 한다는 말이 들려온 것 같았으나 조걸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아까 전 손길이 닿았던 머리를 매만졌다. 아쉬운데. 한 번만 더 해주지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민 채 이제 다른 사제 앞에 서 있는 윤종을 노려보았다. 눈길이 느껴질 법도 한데 윤종은 단 한순간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쪽을 의식하는 낌새조차 없었다. 완벽한 무시. 오히려 앞에 있던 사제가 이쪽을 힐끗거렸다. 여길 훔쳐보며 무어라 이야기하는 사제를 보며 이마를 짚는 윤종을 보아하니 아마 제 이야기를 한 듯싶었다. 조걸 사형이 여길 노려보고 있다고. 하지만 그뿐이었다. 윤종은 손을 설레설레 저었다. 그 후로 사제가 이쪽을 보지 않는 걸 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 듯했다.
역시 안 해주려나. 힘이 빠졌다. 알고는 있었다. 부탁한다고 쉽게 해줄 거라 기대를 한 것도 아니고 괜히 억지 한 번 부려본 거였다. 물론 진짜 해주면 더 좋았겠지. 해주면 좋았겠지만……. 어라. 이거 기대한 거네. 다시 한번 더 매달려볼까.
그래야겠다. 한두 번 얻어맞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한 번 더 얻어맞는다고 뭐가 문제랴. 마음을 다잡고 일어서자마자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놈아. 그렇게 노려보면 되겠냐?”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윤종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정말이지…….”
인지하기도 전에 머리 위에 손이 턱 올라왔다. 아까 그 손이었다.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그 손. 이게 뭐라고 그렇게 노려보았느냐. 타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한발 늦게 상황을 인지한 조걸은 헤실헤실 웃었다.
“전 역시 사형이 좋습니다.”
“……전혀 안 듣고 있었구나.”
“한두 번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제다, 문제!”
한껏 목소리를 높인 것치고는 손길은 여전히 아까와 비슷했다. 아까보단 조금 더 거칠어졌지만, 싫진 않았다. 오히려 윤종 같아서 좋았다. 가만히 쓰다듬을 받자니 문득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올랐다. 어릴 적 제 버릇을 못 버리고 덜컥 안긴 조걸을 밀어내지도 않고 오히려 등을 도닥여주는, 심지어 하루 이틀로 끝내는 게 아닌 조걸이 안길 때마다 마주 안아주었던 그때를. 난처해하는 기색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밀어낸 적은 없었다.
“근데 진심입니다.”
“음?”
“말은 그래도 항상 해주시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그랬더냐. 이제 진짜 안 해줄 거다. 고개를 획 돌려버렸지만, 손만은 여전히 부드러움을 품은 채 머물고 있었다. 윤종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래서 아쉽지는 않았다.
이튿날 윤종은 또 쓰다듬어주었다.
이상하게 여긴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것뿐이었으면 윤종을 그리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옛 생각이 난다며 마냥 좋아했을 것이다. 제 단순한 성정에 무언가 깊이 생각할 리 없지 않은가. 바로 오늘 있었던 일이 결정적이었다.
응? 지금 누가…….
뺨에 닿는 손길이 간질간질했다.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기라도 하는 듯이 조심스럽기도 한 손길. 누구지. 그럴만한 사람이 없는데. 여긴 집도 아니고 가족들도 없고 무엇보다 전 이제 어린애도 아니었다. 다른 때였다면 손길이 가까이 오는 순간 벌떡 일어나 상대를 제압했겠지만, 여긴 화산이었다. 그 사실에 마음이 놓이는 것도 있고, 굳이 이 손길을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누군지는 알고 싶었기에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아 자꾸만 감기려는 눈에 힘을 주었다. 흐릿한 형상이 점차 또렷해졌다. 당황스러워 보이는.
“윤종 사형?”
“아. 미안하구나. 더 자거라.”
볼에 닿는 느낌이 사라지더니 그 온기가 이번에는 눈가를 덮었다. 기껏 빛에 적응한 눈이 다시 어둠에 가려졌다. 사형……. 더 해주십셔…….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작았으나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손은 여전히 눈가에서 머물렀다.
잠깐의 기다림도 참을 수 없었는지 한 번 더 목소리가 울렸다.
사형.
채근하는 목소리에 머뭇거리던 손이 이윽고 뺨에 닿았다.
“어리광만 늘었구나.”
누구 탓인데요……. 지금 누굴 탓하는 거냐.
그런 의미가 아니라……. 조걸은 대답 대신 윤종의 손에 뺨을 파묻었다. 윤종 역시 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 못 가 입을 연 것은 조걸이었다. 잠에 푹 절여있는 목소리로 윤종을 불렀다.
사형, 계속 곁에 있어주세요.
돌아오는 답은 없었으나 알 수 있었다. 윤종이 손가락만 움직여 볼을 옅게 쓰다듬었다. 볼에서부터 퍼지는 따스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바라보다 제 볼을 만져보았다. 잠들기 직전 마지막 기억 속 온기를 다시 느껴보고 싶은 탓이었다. 하지만 윤종이 아닌 제 손으로 만져봤자 그 온기를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제가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어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불퉁히 투덜거리다 지척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당연하게도 윤종이 서 있었다.
“깼느냐.”
“어디 가셨었습니까. 제가 계속 있어달라고 했는데.”
“허….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하던가?”
그리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제가 뭘요. 아니다. 깼으면 이제 들어가거라.
미련 없이 돌아서서 가려는 걸 잽싸게 허리에 매달렸다.
“이번엔 또 왜.”
“또… 안 됩니까?”
걷어차이거나 몸이 던져질 것을 예상해 몸에 힘을 주었으나 윤종은 의중을 알 수 없는 모호한 낯으로 조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저도 모르게 손을 떼어냈다.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지 왜 그런 눈빛으로 보고 그럽니까.”
왜 던지지도 때리지도 않고.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오늘 확실히 조걸은 선을 여러 번 넘었다. 사형의 손을 베개 삼아 잠들질 않나, 그러면서 계속 옆에 있어달라고 하질 않나, 거기다 일어났을 때 없었다고 투정까지. 어린애보다 못한 행동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 정도이니 윤종이 느끼기에는 더하겠지.
“이제 안 그럽니다, 안 그래요.”
“……그래.”
멀어지는 윤종의 뒷모습을 끝으로 현실로 돌아왔다.
잠이 가시고 혼자 가만히 생각하니 이상한 것이었다. 개인 수련을 하다 잠깐 선잠 든 것이라 그 사이 윤종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도, 그것도 그냥 지켜본 게 아니라 다정스레 뺨을 만져준 것도, 잠에서 깼을 때 윤종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도 전부. 그렇게 생각하니 비단 이 일뿐만 아니라 그동안 어울리지도 않게 칭찬을 해준 것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도 전부 이상하게 느껴졌다. 윤종이 제게 해주는 행동들이 꼭…….
알 수 없는 답답함에 제 머리를 헝클었다. 안 그래도 곱슬기 어린 머리카락이라 더 산발이 되었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윤종 사형을 찾아가야겠다.
답답함에 몸서리치는 건 제게 안 맞았다. 알 수 없는 건 바로 해결해야 풀리는 게 조걸이었다.
문 앞에 선 조걸은 답지 않게 앞에서 긴장했다. 언제 사형 방에 들어갈 때 이렇게 긴장했던 적이 있던가. 적어도 기억하는 한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사형, 저 조걸입니다.
-
“들어오거라.”
조걸은 문이 열리자마자 ‘사형 요즘 이상합니다.’를 시작으로 조잘조잘 쉬지도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문이 닫히기 전에 말이다. 윤종은 그의 팔을 잡아당겨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문을 닫자 잠깐 팔이 붙잡혀있는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조걸이 다시 입술을 떼려고 했다. 이번엔 윤종이 빠르게 그의 입을 막았다.
“일단 조용히 하거라. 그리고 거기 앉아.”
“네…….”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조걸이 여즉 서 있는 윤종을 올려다봤다. 가만히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자니 울컥하고 속에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무엇인지 모르지는 않았으나 모르지 않았기에, 알고 있기에 외면하고 차분히. 아니, 차분한 척 입을 열었다.
“그래서 왜 찾아온 것이냐.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이상합니다.”
“…….”
안 그래도 윤종은 자책하던 중이었다. 왜 그걸 찾아가서, 그것도 다시 찾아가서 다 들키게. 심지어 잠들어 있는 걸이를 보고 참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 이건 다른 것과는 다르게 분명 이상하게 여길 걸 알면서도.
착잡한 마음에 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눈은 착실히 앞에 있는 상대를 훑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했다.
“사형도 그렇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사형 혹시 어디 아프십니까?”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이 삐끗했다.
“헉! 아니! 그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는 정말 그런 말을 내뱉을 생각은 없었던 건지 세차게 손을 저어가며 부정했다. 진심이 듬뿍 묻어나는 표정과 몸짓으로 연신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저러다 끝이 없겠네. 한숨이 나왔다. 알았으니 진정하고 계속 말해라.
“그… 사형은 안 앉으십니까?”
“난 됐으니 말해도 된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말하라고 하니 아까까지 열렬히 쳐다보던 눈은 어디 가고 이젠 눈도 잘 안 마주치고 힐끗거린다. 윤종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어차피 그에게도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긴 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몇 번 입술이 무슨 말이라도 할 듯이 우물거리다 닫히기를 반복하더니 아까와는 다른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형이 자꾸 그러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응?”
“자, 잠시만요!”
말을 내뱉는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윤종이 칭찬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부탁을 들어주고 했던 거…… 사실 그동안 다른 사형제들에게는 다 해주던 게 아니었나? 그리고 이제와서 나한테도 좀 해주는 거고?
싸해졌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나한테만 유독 박하게 구니까.
목소리가 절로 기어들어갔다.
“솔직히 이건 사형 잘못입니다.”
“그건 또 무슨…….”
“다른 사형제들에게 해준 걸 이제와서 저한테 해주셨잖아요.”
“아니, 딱히 그런 적은 없는,”
“사형, 사형이 이러니까 자꾸 오해하잖아요!”
조걸은 벌떡 일어섰다.
“아니……. 안 그러던 양반이 갑자기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그러니까……. 그리고 오늘도 찾아오고 잠들 때까지 안 밀어내고.”
“…….”
“히익!”
윤종의 표정 변화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사렸다. 하지만 예상한 반응이 안 돌아오자 어리둥절하게 윤종을 바라봤다. 이럴 리가 없는데 왜 가만히 있지? 분명 또 무슨 헛소리냐며 한 대 얻어맞아야 하는데.
“사형 정말 왜 그러십니까?”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이마에 손을 짚는 그 손을 떨쳐낼 생각도 못 했다.
그런 행동들을 왜 했냐면, 그냥 걸이가 그날따라 유독 귀여워 보여서. 그래서 해주고 싶어서.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오히려 누가 제 손과 입을 막아줬으면 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걸이의 복슬한 머리카락 위에 손은 올라가 있었고, 걸이는 절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면 매달리는 걸이에게 지금 심정을 들킬까 염려되어 전부 뿌리쳤다. 그럼에도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면 또 못 지나치고 다시 걸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결국 오늘도 잠깐 얼굴만 보고 가려다 자고 있는 모습을 결국 못 지나쳤다. 기어코 가까이 다가갔고, 손을 뻗었다.
왜 걸이 앞에서는 이리도 자제심을 잃는지.
열은 없는데. 아닌가, 있는 건가?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았다. 이번엔 제 이마에도 손을 짚어보고 비교하고 있었다. 의약당에…….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윤종이 여즉 제 이마를 짚고 있는 손목을 잡았다. 이번에도 머리보단 마음이 더 빨랐다.
“오해, 아닐 것이다.”
똑바로 본 걸이의 볼은 제 볼과 똑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